2023년 2월 14일 건강일기 - 발렌타인데이의 악몽
*주의*
많은 일들이 있던 날이므로 다소 분량이 많을 수 있습니다
오랜만이다
정말 오랜만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2023년 2월 14일 오전 7시 30분경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는 도중 쓰러졌다
정신을 차렸을때, 애인은 나에게 CPR을 하고 있었고 나는 물을 토하며 의식을 되찾았다.
엄청난 두통과 어지러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통증들과 함께.
체온은 많이 떨어졌는지 몸이 바들바들 떨렸고
머리가 너무 아프고 어지러워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사실 실신 경험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여섯번의 실신을 경험하면서 이런 고통을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나는 '죽음에 가까운 고통이 이정도일까' 라는 생각이 들며, '진짜 죽는건가' 싶었다.
애인 걱정이 많이 됐다.
그저 쉬는 날이라서 서울로 올라와 나랑 같이 먹고 놀고 자고 하는 거였을텐데
얼마나 놀랐을까
놀란 애인앞에서 괜찮은 척 하고 싶었지만, 그땐 내 정신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떻게든 죽고싶던 사람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몸에 힘이 없어 애인에게 매달린 상태에서 공포심에 휩싸여 '나 죽기 싫어' 라고 했다.
애인은 나를 다독이며 괜찮다 괜찮다 해주었다.
정말 멋있는 사람이다.
많이 놀라고 정신 없었을텐데, 쓰러진 나를 보고 CPR을 하고 의식이 깨자마자 119에 신고해 곧장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도록 했다.
내가 태어나서 본 가장 멋있는 사람이다.
컨디션이 그나마 괜찮아진 현재(3월 2일)
아무래도 병실에서 쓰는 글이다보니 두서없이 적었다
이제는 시간의 순서대로 적어보겠다
때는 2월 14일보다 이전인 2월 9일로 돌아간다
2월 9일 목요일 저녁,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 날은 애인이 금요일에 내려가기로 했던 날이었다
그래서 같이 저녁을 먹고 애인은 로아를 하고, 나는 누워서 유튜브를 봤다
평소와 같은 일상이었다.
그러다 목이 뻐근해 뚜둑 소리를 내기 위해 목을 비틀어 뼈소리를 냈다.
그때 뭔가 갑작스레 목과 머리에 통증이 느껴지면서 불편했다.
도저히 가만히 누워있을 수 없었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애인에게 말했더니 애인이 목 마사지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약간의 통증과 불편함은 남아있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아졌고, 다음날 되면 괜찮아지겠지 싶었다.
그렇게 다음날, 2월 10일 금요일.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데 어제와 다르지 않은 통증들이 몰려왔다.
직감으로 알았다.
병원을 가야한다는 것을.
그래서 출근 준비를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급하게 팀장님께 연락드려 당일 연차 사용과 관련하여 연락을 드렸다.
팀장님께서는 흔쾌히 수락해주셨고, 몸부터 챙기라고 걱정해주셨다.
(늘 생각하지만 팀장님도 정말 멋있으신 분이다)
그렇게 연차를 쓰고, 병원 개원 시간이 될 때까지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그러다가 결국 점심이 지나서까지 잠에 들어버렸다
일어나서 애인은 준비 후 다시 천안으로 내려갔고, 이른 오후 나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정형외과로 향했다.
박세용 정형외과의원에 방문했고, 의사선생님께서는 나이가 지긋하셨다.
사실 나는 나이가 많은 의사분들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고정관념과 편견에 휩싸여있을 것 같다.
그런데 박세용 의사선생님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셨다.
나의 증상들을 면밀히 들어보시고는 진단을 내려주셨다.
(어쩌면 고정관념과 편견에 찌들어있는건 내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진단을 받고 약 처방도 받아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앞에 꽤나 큰 한의원이 있는데, 침을 맞으면 조금 더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내려간 애인과 잠깐의 통화 후에 한의원에서 침 치료까지 받게 되었다.
그렇게 주말을 보냈음에도 월요일까지 괜찮아지지가 않아서 목에 파스를 붙이고 출근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망고 유치원 등원 날이라서 아침일찍 나와 망고 등원까지 시켰다...
그렇게 어찌저찌 월요일을 보내고 퇴근했다.
집에 돌아가기 전, 망고를 하원시켜 함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애인이 집으로 왔다
애인도 공연준비로 바쁠 시기였는데, 잠깐이라도 보겠다며 찾아와주었다.
이 한 수가 애인의 신의 한수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나, 애인, 망고는 행복한 저녁식사와 하루를 보내고 잠에 들었다.
결전의 2월 14일 아침, 알람시간보다 10분정도 일찍 눈이 떠졌다.
항상 일어나면 전자담배를 꼬나물던 나는 여지없이 전담을 입에 물고는 뻑뻑 피워댔다.
애인과 망고가 잘 자는지 확인하며 약 5분에서 7분가량 전담을 피워대고는 이제 씻을 시간이라며 보일러를 켜고 씻으러 들어갔다.
근데 몸이 조금 이상했다.
뭔가... 약간 어지럽고 아팠다.
그냥 담배피워서 그런거겠거니 싶어 샤워기물을 맞으며 양치질을 했다.
그런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익숙한 목소리, 애인이었다.
나를 흔들어깨우는데 갑자기 토가 나왔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물토 라는 것을 단번에 느꼈고, 애인은 나를 흔들어 깨우며 괜찮냐고 여러차례 물었다
나는 무슨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그때, 갑작스레 두통이 몰려오고 엄청난 어지러움증이 동반되었다.
몸은 추웠고, 앞을 볼 수 없고, 내 힘으로 서있기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제서야 알았다.
쓰러졌구나.
순식간에 상황을 스캔했다.
바닥에 피는 없으니 머리를 부딪히진 않은 것 같았다.
(아니면 샤워기 물에 씻겨 내려갔거나)
애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나 쓰러졌었느냐, 얼마나 쓰러졌었느냐, 쓰러지는 소리를 듣고 단번에 온 것이냐 등등...
애인은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우당탕탕 소리가 나길래 본인은 잠결에 바깥에서 나는 소리인줄 알고 그냥 잤다.
근데 망고가 자꾸 화장실 쪽을 바라보고 짖길래 무슨일인가 싶어 화장실에 들어가보았다.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나는 벌거벗고 물을 맞으며 누워서 끙끙 앓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급하게 CPR을 했다고.
그렇게 앰뷸런스까지 불렀다.
애인에게 괜찮다는 느낌이라도 줘야겠다는 생각에
'옷은 내가 입을테니까 걱정말라'고 했다.
그렇게 빨래건조대에 걸린 옷을 주섬주섬 입고서는 애인의 부축을 받아 1층으로 내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강동경희대병원으로 이송됐다.
너무 아팠다
머리도...
정신도....
전부 너무 아팠다...
그런데 구급대원분은 병원이송 전까지 환자에 대한 정보를 기록해야하니 이것저것 물어보시는데 대답은 해드려야겠고....
정말 죄송하지만.... 속으로 '아 왜 자꾸 쳐물어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여러 절차를 거친 뒤에 나는 거의 의식을 다시 잃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모든 검사는 끝나있었고 나의 진단명이 나왔다.
" 뇌 출 혈 "
정확히는 이미 진단받았던 뇌동정맥기형에서 출혈이 발생한 것이다.
정밀검사 결과 밝혀진 바로는 출혈이 발생한 것은 맞지만 뇌에 주머니 같은 기관이 있는데,
출혈로 인한 혈액들이 그 주머니에 담겨있어 큰 이상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출혈만 막아놓았고, 가장 중요한 뇌동정맥 기형 치료 수술은 내 컨디션이 괜찮아지는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강동경희대병원은 뇌동정맥기형을 최초로 진단받았던 곳인데, 당시 진료를 봐주셨던 신희섭선생님께서 직접 응급실로 오셨다.
신희섭 선생님께서는 내가 응급실에 있는 모습을 보시자마자 나를 알아보셨다.
다른 것보다도 단 하루 진료를 봤던 환자인데 기억해주시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했다.
(다만,,, 아산병원으로 옮기는 결정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다들 안좋게 생각하는듯 싶었다...)
2월 14일 병원 이송 후 부터 약 하루정도 중환자실에 있었고,
이후부터는 일반병동으로 옮겨 지내게 되었다.
일단 중환자실에 있을 때,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아파서 차라리 진짜 죽고 싶었다.
일반병동으로 옮기고 나서도 한동안은 너무 아파서 진통제를 달고 살았고, 진통제의 공백이 생기는 순간,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
태어나서 가장 아팠던 순간이 코로나 걸렸던 순간이었는데, 코로나는 애기 코딱지만큼도 안아픈 거였다.........
정말.... 이렇게 아플 수 있구나 싶었다.....
지옥이 있다면 여기고, 죽음의 고통은 최소한 이정도겠구나 싶었다......
심지어 더 무서운건 뇌 관련된 출혈이라서 그런지, 자꾸 헛것을 생각하면서 마치 사실인양 인지한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한번 어느 자동차회사가 병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몰래카메라 썰을 어디서 본적이 있는데,
대충 내용은 이렇다.
휴대폰 사용이 활발하지 않은 시대,
활동이 가능한 환자들에게 회사는 1등할 시 회사에 대한 어마어마한 지분과 재력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가에 동의한 약 30여명의 환자들은 서로 경쟁을 하게 되는데, 그 중에 1등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자동차회사가 참가자들에 대한 정보를 모두 수집해놓은 상태에서 진행됐으며, 실시간으로 도청 등을 활용해 모든 참가자의 동태와 계획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미 1등은 결정된 상황이었고, 이 모든 것은 자동차회사의 CEO의 지령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일반병동에서 자는 와중에 이 썰이 떠오른 나머지 자다가 중간에 깨서는 옆에서 자고 있던 아버지에게 나는 대뜸 물었다.
'아빠가 회장인거에요?'
'이거 다 아빠가 짠거에요?'
그리고는 아버지는 대답했다.
'사실 그렇다'
나는 그렇게 내 상상이 마치 실제인 양 인지하게 되었다.
하루이틀이 지난 후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에게 물으니 내가 아버지에게 저 질문을 했을 때, 아버지는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잘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서는 이상한 질문을 하니 무서웠다고 한다
그런데 더 무서운건... 나도 내가 왜 저런 생각을 하고 왜 저런 질문을 했는지 이유를 모른다는 거다...
그냥 그런 생각이 문득 났고, 그게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던 거였다...
되돌아보면 참 무서운 일이긴 하다
이러한 케이스가 뇌출혈때문인지 아니면 약을 너무 많이 써서 부작용으로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웃기긴 하다ㅋㅋㅋㅋ
+
새로운 증상을 추가로 적자면, 쓰러지고 난 이후 오른쪽 눈이 안보이기 시작했다
완전히 안보이는 것은 아니고, 정면 부분만 어둡게 보이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안과진료를 받으며 들어보니
뇌출혈이 생기고 나서 혈액이 오른쪽 안구로 들어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걸 제거하려면 수술을 해야하고, 안구 안의 유리체를 모두 제거하고 다시 채우도록 하는 수술을 해야한다고 하셨다.
한쪽 눈은 보이고 한쪽 눈은 안보이니 상의 균형이 맞질 않아 어지러움이 더 많이 느껴져서 결국 오른쪽눈을 감고 다녔다.
일단 14일 까지의 여정은 여기까지 담도록 하겠다.
나의 목숨을 구해준 멋있는 우리 애인과 망고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보내는 바이다.
사랑한다